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리 골드워터 (문단 편집) == 생애 == [[1952년]] 애리조나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상원 원내 대표였던 [[어니스트 맥팔랜드]]를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며 당선된다.[* 이후 58년에 주지사 재선을 한 맥팔랜드와 리매치를 해서 더 큰 차이로 승리한다.]당대 공화당의 주류를 형성했던 [[록펠러 공화당|온건 보수 계열]]과는 거리가 있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공화당 소속 현직 대통령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너무 민주당과 타협을 많이 한다고 비판했으며, 그가 대법관으로 지명한 [[얼 워런]]을 인준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강경한 보수 성향의 정치인답게 공화당과 [[남부 민주당원|민주당 내 남부보수파]] 의원들의 모임인 [[보수연합]]에 적극 참여했다. 다만 그가 소속된 보수연합은 민주당 주류들에 맞서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법안들을 통과시키는데 기여했다. 그가 가장 주목받은 순간은 [[1964년]]의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난전 끝에 [[넬슨 록펠러]] 등을 꺾고 대선 후보로 결정된다. 이때 지지 연설을 해서 유명세를 얻은 게 그 유명한 [[로널드 레이건]].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아 그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던데다가, 현역 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의 [[민권법]] 추진과 위대한 사회 구상이 미국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전반적으로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골드워터는 아예 소형 핵무기를 남베트남 국경에서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크렘린]]의 남자(=[[흐루쇼프]]) 방에 핵무기를 떨어뜨리자는 식[* 다만 진지한 발언이 아니라 농담조였다고.]의 발언을 일삼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넘긴지 2년 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이러한 발언은 '''그냥 선거에서 낙선하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당시 공화당 주류였던 [[록펠러 공화당|온건파]]의 반발을 사 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진 데다가, 부통령 후보마자 강경보수파인 [[윌리엄 E. 밀러]]를 골라 당내 분열을 봉합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존슨 대통령이 골드워터가 당선되면 핵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암시한 "[[데이지 걸]]" 광고를 내보내면서 결국 최총 득표율 38.5%, 득표율 차이는 22.6%, 확보 선거인단은 434명씩이나 차이나는 역사적인 참패를 당한다. 패배가 확정된 후에도 한동안 패배 승복을 하지 않아 존슨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불만을 표시했고, 골드워터는 그제서야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 연설을 통해 축하의 말을 전했다. 다만 승복 연설에서도 공산권 국가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나서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 했다. 골드워터와 공화당에게 그나마 있던 희소식은 골드워터의 '남진' 정책이 영향을 미쳐 소위 'Solid South'라 불리며 민주당의 굳건한 정치적 기반이었던 남부 5개 주에서 골드워터가 승리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조지아 주에서는 '''역대 처음으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 변화는 이변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게 되고 [[리처드 닉슨]]과 공화당의 [[ 남부전략]]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남부의 표를 얻을지언정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계속 남부에서 우위를 점했다. 공화당이 남부를, 민주당이 북부를 지지 기반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가 되어서야 이루어진 일이었다. 'Solid South'는 공화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을 버텼던 것이다. 64년 대선 후에도, 골드워터는 꾸준히 공화당의 원로로서 활동했고, 1968년 애리조나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상원으로 복귀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엔 닉슨 대통령에게 강력히 하야를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정계 활동 막바지인 1986년에는 민주당의 [[윌리엄 니콜스]] 하원의원과 미군 지휘체계의 3군 합동성을 강화하는 국방부 개편 법안을 발의, 통과시키는 데 주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골드워터가 은퇴하고 그의 지역구에서 뒤를 이은 사람이 바로 [[존 매케인]]. 아이러니하게도 매케인은 골드워터와 달리 온건 보수파였다.] 이는 '골드워터-니콜스 법'으로 불리며, 오늘날 미국의 군 지휘체계 기초를 마련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파일:gwater_012495ap.jpg]] 골드워터의 말년 현대 미국 공화당과 미국 보수주의의 원류로 평가받지만, 정작 만년의 그는 공화당을 장악하기 시작한 보수파에 대해 꽤 실망한 듯 하다.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발뺌하는 레이건을 상대로 대통령은 무능력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고, 극우로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던 애리조나 주지사 에반 메참에게 사임을 권유하고 2년 뒤 공화당이 "부끄러운 사람들"에게 장악되었다고 발언하면서 특히 [[팻 로버트슨]] 등 보수 목회자들을 바탕으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기독교 우파]]를 강하게 비판했다. 상원의원 은퇴 후에는 낙태와 동성애자의 군복무 허용과 입양 문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을 놓고 당 주류인 사회적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놀라움을 불러일으켰고, 1992년 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낙하산 후보를 상대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당선시키기까지 했을 정도. [[밥 돌]]이 1996년 선거 당시 보수파들에게 미온적인 지지를 받자, 골드워터는 "우리가 공화당의 새 리버럴들일세. 상상이 되나?[* 둘 다 초기에는 보수파로 분류되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